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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 이야기 2: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교회
    기독교교육정보 2024. 2. 26. 17:51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을 살펴보면서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초대교회(가톨릭 교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못하리라"(마 16:18)라는 말씀으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음부의 권세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최초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행2장).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중 가룟인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를 포함한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공동체를 이루며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행했다. 이후에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자신을 사도에 포함시켜 사도적 교회의 교리를 완성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사도들이 살아있을 때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속사도들이 활동했던 약 100년(A.D. 1세기) 정도의 기간이었다.   

     

    교부시대(가톨릭 교회)

    2세기가 되면서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등장했지만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지 못하고 핍박을 받자 기독교를 변호하는 변증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교부들이라 불리며 기독교를 변증 하는 과정에서 신학과 교리를 발전시켰다. A.D 100-700년 사이를 교부 시대로 본다. 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죽으면서 큰 아들에게는 동로마를, 작은 아들에게는 서로마를 다스리게 했다. 이때부터 교부들 또한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어져 활동하게 되었다. 동방교부로는 아타나시우스(295-373), 바실(329-379),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329-389), 닛사의 그레고리(335-394) 등이 있으며, 서방교부로는 터툴리안(155-240), 암브로시우스(340-397),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등이 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섞이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기독론이 확립되면서 동방 교회와 서방교회의 교리마저 분리되기 시작했다. 서방교회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따랐으나 동방교회에서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 인정하는 단성론을 주장하는 세력이 강했다. 하지만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 서방교회는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중세시대(로마 가톨릭교회)

    700년부터 1500년까지의 기간을 중세시대로 본다. 700년경부터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서방교회에 새로운 움직이 일어났다.  특히 동로마제국과 싸우던 프랑크 왕국의 성장하면서 서방교회가 있는 로마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서방교회는 프랑크 왕국과 손을 잡았다.  751년 서방교회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가의 마지막 왕을 폐위시키고 패팽을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포하였다. 754년에는 서방교회의 교황인 스테파누스 2세가 패팽의 아들 샤를 마뉴 대제에게 제국의 황제라는 칭호를 내리는 대관식을 거행했다. 800년경 교황 레오 3세는 이미 대관식을 치른 샤를 마뉴를 로마로 불러 황제의 관을 씌워 줌으로써 그가 서로마 제국의 새로운 황제임을 선포하였다. 이후로 로마 교회는 절대 권력자들의 보호아래 또 한 번의 권력의 일취월장을 과시한다. 이는 로마 교회가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다스림 아래 머무르기보다는 세속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가 되고 말았던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참교회의 역사], 78쪽). 중세시대 이후 가톨릭(catholic)은 보편교회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세속 권력인 로마와 손을 잡은 로마 가톨릭으로 변질되었다.

     

    16세기 로마 가톨릭의 개혁의 필요성

    중세의 로마 가톨릭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교부들이 세운 성경적인 교리를 떠나 장로들의 전통을 따랐다.

    교황제도는 세속화되고 이기적이고 폭압으로 전락했으며 교황들의 도덕성도 악화 되어 성직 매매도 거리낌 없이 행했다.

    성직자 독신제는 부정과 성적 불결의 온상이 되었다. 

    규율이란 거의 파괴되어 모든 수도원 체계와 종단들은 무지와 미신, 안일과 낭비의 온상이 되었으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사제의 주된 의무는 신비스러운 말로 실체 변화의 기적을 행하는 것이었으며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해 낯선 언어로 미사의 희생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교회당들은 좋고 나쁜 그림들, 진짜와 허구적인 유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성자 숭배와 성상 숭배, 미신적인 의식들과 예전들이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직접 예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영혼과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연합과 인격의 성화로부터 흘러나와야 하는 경건이 변질되어, 아베마리아 암송, 금식, 자신금 기부, 사제에게 고해, 성지 순례와 같은 기계적인 행위들을 수행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선행은 질보다 양에 의해 측정되었으며 보상이라는 이기적 동기에 호소하는 공로의 원리에 의해 오염되었다.

    돈을 주고 죄를 용서받는 면죄부 판매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위해 교황의 재가 아래서 행해졌다. 

    ([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 7], 2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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