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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이야기 3: 종교 개혁과 성경기독교교육정보 2024. 3. 11. 21:41
출처: 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 7]
종교 개혁이 로마 가톨릭의 부패 때문에 발생했다면 종교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준 것은 성경이었다. 사제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은 종교개혁과 함께 일반 백성들의 손에 들려졌다. 종교 개혁 시기에 성경이 어떻게 확대되었는지 필립 샤프의 [교회사 전집 7]에서 살펴보자.
로마 가톨릭의 성경
로마 교회는 비록 성경의 신적인 영감과 권위를 인정했지만 가르치는 사제직에 의해 평신도들을 통제하고자 하여, 오용과 독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정한 제한과 조건 아래서만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 읽는 것을 허용했다.
13세기에 갈리아 지방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로망스어 번역본 읽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그 사본들을 불태우도록 명령했다.
마인츠의 대주교 베르트홀트는 1486년 1월 4일 교령에서 거룩한 책들, 특별히 성경을 자신의 허락 없이 번역하고 그 번역본을 유포시키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출교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요한 후스와 프라하의 제롬을 화형시킨 콘스탄츠 공의회(1415)는 성경 전체를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인 위클리프의 저술과 해골까지도 불태우도록 저주했다.

존 위클리프와 성경 교황 피우스 4세는(1564) 경솔하게 성경의 번역본을 읽는 것은 유익보다는 해가 더 많다는 확신을 가지고 주교나 종교재판관의 특별한 허락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베네딕투스 14세는(1622) 자국어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그 번역판이 로마의 인정을 받아야 하며 교부들과 가톨릭 학자들의 저술들로부터 설명적인 주해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이것은 개신교 번역판을 읽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개신교 번역판들은 부패하고 이단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종종 로마 가톨릭 국가들에서 불길 속에 처넣어졌다.
영국으로 밀반입된 틴들의 신약 성경 초판은 런던 주교 턴스톨의 명령에 의해 성 바울 성당의 뜰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에라스무스(1466-1536)의 라틴어 성경
에라스무스는 16세기 초반의 학자들에게 왕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원치 않게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되었지만 신학보다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졌고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가 되었고, 최초로 라틴어 번역을 붙인 헬라어 신약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편집하여 펴내는 등 자신의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교회를 위해 쏟아내며 종교개혁의 길을 열어주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들은 종교개혁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취리히의 츠빙글리(1484-1531)는 스위스 글라루스주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되었지만 스위스인 용병을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난 후에 에라스무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신약 성경을 읽고 복음을 발견했다. 그 후에 그는 스위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의 설교 담당 사제 자리에 지원하여 1518년부터 신약성경 연속 강해를 시작하면서 취리히를 개혁시켰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에서 '이신칭의' 복음을 깨닫고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를 붙였다. 루터는 1521년 4월에 열린 보름스 의회에서 황제와 선제후들과 교황의 특사들 앞에서 “인간이 만든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하고 권위를 앞세운 억압을 양심의 자유”로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 이단자로 낙인찍혀 죽을 운명에 처했다. 당시 황제였던 카를 5세가 보름스 의회를 떠난 루터를 살해하려고 했으나 이를 안 작센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은밀하게 빼돌려 목숨을 구해 주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서 숨어 지내며 헬라어로 된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1522년 3월에 완성했으며 히브리어로 구약 성경은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후에 번역했다. 신약 성경을 번역할 때는 1519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출판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 성경 제2판을 토대로 삼았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출판되기 전 독일에는 각각의 지방어로 된 성경 인쇄본들이 있었다. 독일어는 여러 방언들로 갈라져 있었으며 모든 방언을 대표할 수 있는 표준어도 없었다. 루터는 작센주 방언을 채택하여 사용하기 쉽게 만들고 신학과 신앙에 맞게 다듬었다. 그는 독일어에 내재된 풍부함과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잘 이끌어 내며 독일 언어학의 최고 권위자라를 수식어를 얻었다.

루터가 번역한 신약성경 스위스의 성경
루터의 신약 성경이 바젤에서 난외주를 달아 재출간되었고,1524년에는 취리히에서 스위스 방언으로 개정된 이후 계속해서 개장판이 나왔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성경전체가 독일어로 나온 것은 독일의 루터 성경보다 4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스위스 번역판은 문장의 힘, 유려함, 대중성에 있어서 루터의 성경을 따를 수 없지만 보다 원문에 충실했으며, 연이어 나온 개정판들은 성경 주석의 발전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스위스 번역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위스 국민들의 가슴에 한층 더 가까이 가져다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루터판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캐논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 성경만 인정했다. 따라서 성경은 사제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백성들에게는 성상이나 성화로 성경을 가르쳤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던 백성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일수밖에 없었고 성상과 성화를 믿으며 기독교적인 미신들을 만들어냈다. 위클리프의 영어 성경,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각 민족의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각 나라의 신자들은 자국어로 된 성경을 읽고 구원자를 만났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의 자국어 번역은 종교개혁의 마중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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