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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욥기 22-27장 요약: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욥(성경 1독 164일차)
    기독교교육정보 2026. 6. 13. 08:18

     

    친구들은 "고난은 죄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욥은 "모든 고난을 죄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친구들은 인간의 고난을 인과응보의 논리로 접근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공의로 이해했습니다. 반면 욥은 고난의 이유는 몰라도 공의의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라면 그 고난은 선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다 아는 내용이라는 착각으로 대충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세하게 읽으려고 힘들지만 요약하는 작업을 합니다. 요약만 할 뿐 성경의 내용을 해설하거나 주해는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주는 메시지는 받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쉬운말로 요약된 내용을 읽으시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를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기 22-27

     

    욥기22: 욥이 죄인이라고 주장하는 엘리바스

    엘리바스는 먼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로움 때문에 유익을 얻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욥을 징계하시는 것은 욥에게 실제로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근거도 없이 욥이 지은 죄들을 열거한다.

     

    계속해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서 다 보고 계시지만 욥은 그렇지 않다고 하며 악인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책망한다. 그리고 욥에게 불의를 버리고 전능자를 금보다 귀하게 여기면 기도에 응답을 받고 회복될 것이라고 한다.

     

    욥기23: 욥은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주장함

    욥은 엘리바스의 말에, 자신도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왔고, 하나님의 명령을 귀하게 여겨 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욥 자신을 더 단련시킨 후에 순금같이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욥은 자기에게 닥친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확신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때문이지 흑암()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욥기24: 죄 때문에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함

    전능자는 (심판의) 때를 정해 놓지 않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남의 재산을 빼앗고 어떤 사람은 가난으로 고통을 당하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신다. 또 광명을 배반하는 자들 즉 밤에 활동하는 강도와 도둑과 간음하는 자같이 은밀하게 죄를 짓는 자들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잠깐 높이지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심판이 이루어진다.

     

    욥기 25: 여전히 욥을 정죄는 빌닷

    빌닷은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이루시는 분이 맞다면 욥의 말에 동의하지만, 인간은 다 죄인이라며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욥을 말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욥기26: 하나님을 알 수 없으니 자신의 고난의 원인도 알 수 없다.

    욥은 자신을 가리켜 지혜 없는 자라고 하면서 친구들이 지혜 있는 자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꼬집는다. 자기와 친구들의 지혜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욥기 27: 친구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 욥

    욥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시지만 자신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하는 친구들의 말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욥은 자신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경건한 자들이며 이들에게 환난이 닥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실 것이며, 그때 자신이 그 불경한 자를 가르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을 향하여 무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비난한 후에 악인은 하나님께 얻을 분깃이 없으며 그들의 소유도 의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욥은 친구들을 악인으로 보는 듯하다.)

     

    오늘의 말씀: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오늘의 묵상: 하나님의 공의와 인내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굳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자신들의 생각 안에 가두어 버렸다는 데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공의는 인과응보였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망한다. 따라서 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큰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보면서 죄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다른 설명이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욥은 달랐다.

     

    욥도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인간이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성경이 말하는 공의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덕적 공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외부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공의이시기 때문에 공의의 기준은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하고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의 의미도 달라진다. 우리는 종종 내가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한다. 악한 사람이 당장 심판받고, 선한 사람이 즉시 보상받는 것을 공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를 구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욥은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고난이 자신에게 왔는지 몰랐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 고백은 고난이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의 선언이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공의로우시다.

     

    신앙은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가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으신 것도 아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때마다 욥의 고백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래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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